'위기를 기회로' 여자대표팀, 미국서 찾은 희망 셋

이민석 기자 | 기사입력 2019/10/10 [08:00]

'위기를 기회로' 여자대표팀, 미국서 찾은 희망 셋

이민석 기자 | 입력 : 2019/10/10 [08:00]

[진주인터넷뉴스=이민석 기자] 기대보다 걱정이 많았던 미국 원정이었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은 보란 듯이 반전을 일으켰다.

황인선 감독대행이 이끈 여자대표팀은 4일과 7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미국과의 친선 2연전을 1무 1패로 마쳤다. 샬럿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0-2 패배에 그쳤으나, 시카고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1-1로 비겼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지지 않은 것은 2015년 5월 0-0 무승부 이후 4년 4개월, 4경기만이다. FIFA 랭킹 1위이자 월드컵을 2연패한 강호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결과지만, 배경을 알고 보면 더 의미가 크다.

한국은 지난여름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패로 탈락했다. 2015년 캐나다 여자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 16강 진출을 노렸지만 세계무대의 벽은 높았다. 유럽, 북미 팀들과의 격차가 4년 전보다 더 벌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한국여자축구의 위기론이 대두됐다. 게다가 윤덕여 감독 사임 이후 새롭게 선임한 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발표 열흘 만에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 진행된 원정 2연전. 상대는 세계 최강 미국. 많은 이들이 대패를 예상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여자대표팀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완벽한 반전이다. 지난달 28일 소집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황인선 감독대행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여자축구에 희망을 줄 수 있는 2연전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자대표팀은 정말로 희망을 찾았다.


희망 하나. 선수들과 하나 된 젊은 코치진

황인선 감독대행을 필두로 한 이번 여자대표팀 코치진은 미국 원정 2연전을 앞두고 급조된 팀이지만, 최단 시간동안 최대 효율을 발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소집 기간 동안 여자대표팀이 가질 수 있었던 야외훈련은 단 5회다. 파주 NFC에서 소집한 첫 날의 짧은 훈련과 샬럿에서의 3회 훈련, 시카고에서의 단 1회 훈련이다.

황인선 감독대행(1976년생), 변성환 코치(1979년생), 정유석 골키퍼코치(1977년생), 박성준 피지컬코치(1987년생) 등 젊은 지도자들로 이뤄진 이번 코치진은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선수들에게 전술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라는 확실한 콘셉트를 갖고 선수단 전체 미팅을 최대한 활용했고, 효과적인 전체 미팅을 위한 코치진 미팅을 수시로 진행했다.

선수들의 반응은 좋았다. 주장 김혜리(인천현대제철)는 “전체적인 시스템이 새로 짜인 상황이라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코칭스태프 선생님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해주셨다”고 말했다. 수비수 임선주(인천현대제철) 역시 “선생님들 간의 조화가 좋은 것 같다. 선수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밝혔다.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여성 지도자, 황인선 감독대행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봐온 터라 선수들 역시 그를 친근하게 대했다. 황인선 감독대행은 격의 없이 소통하며 선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한국여자축구의 대선배로서 함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공유했다.

희망 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어린 선수들

이번 미국 2연전을 앞두고 여자대표팀에 선발된 선수 중에는 세 명의 최초 발탁 선수를 포함해 A매치 경험이 전혀 없는 선수가 총 네 명이었다. 이 중 세 명이 미국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그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1차전에서 후반전 교체 출전해 14분 남짓을 뛴 김소은(구미스포츠토토)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두 차례 위협적인 슈팅을 시도하는 등 패기 있는 플레이를 펼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차전에서 단 4분을 뛴 박예은(경주한수원)은 짧은 시간 동안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자질을 증명해낸 덕에 2차전에는 선발로 기용됐다.

박예은과 같은 1996년생 또래로는 2차전에서 중앙수비수로 나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친 홍혜지(창녕WFC)와 1차전에 교체 출전했던 장창(서울시청), 주전 골키퍼 김민정(인천현대제철), 2차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효경(알비렉스니가타레이디스)이 있다. 김소은은 강채림(인천현대제철), 김진희(창녕WFC)와 함께 1998년생이다. 어린 선수들이 늘어난 덕에 여자대표팀의 평균 나이는 프랑스 여자월드컵 당시와 비교해 약 두 살 어려진 25세가 됐다.

황인선 감독대행은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야 긴장감과 경쟁심이 생긴다. 어린 선수들에게 부족한 것이 국제 경험인데, 이번 미국 2연전과 같은 경험을 쌓음으로써 발전하기를 바랐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수록 여자대표팀 전체의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4년 후의 월드컵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관점에서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한 차례 월드컵을 경험한 강채림은 한층 더 성숙해진 플레이로 미래를 밝혔다. 1, 2차전에 모두 선발 출전한 강채림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으로 적극적인 드리블 돌파를 선보였다. 강채림은 “월드컵 이후 세대교체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어린 선수들이 잘해야 한다. 이 시기에 어린 선수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며 다부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희망 셋.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프랑스, 나이지리아, 노르웨이에 연달아 패한 것은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과 함께 선수들로 하여금 큰 열패감을 느끼게 했다. 피지컬과 힘의 차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월드컵에 참가한 모든 팀들이 기술과 전술 면에서도 눈에 띄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세계수준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미국 2연전을 앞두고도 두려움은 있었다. 직전 미국전(2017년)에서 0-6으로 대패한 기억이 있는 선수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또 대량 실점을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여자대표팀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주장 김혜리는 동료들에게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황인선 감독대행은 “실수해도 되고 실점해도 된다. 계속 도전하고 공격하라. 책임은 내가 진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여자대표팀은 1차전을 치르면서 불안을 확신으로 바꿨다. 수비수 김혜영(경주한수원)은 “우리가 전술적으로 준비가 안됐을 때는 두려운 마음이 컸는데, 잘 준비하고 나가니까 문제가 생겨도 보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1차전과 2차전은 또 달랐다. 1차전에서 0-2로 패하긴 했으나 대등한 경기를 펼침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여자대표팀은 2차전에서 더 힘을 발휘했고, 그 결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지소연(첼시FC위민)은 이번 미국 2연전에 대해 “4년 후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에 있어서 좋은 스타트를 끊은 것 같다. 이것이 한국여자축구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여자대표팀 에이스로서 책임감을 짊어져온 지소연의 진심 어린 바람이다. 황인선 감독대행은 “미국 원정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한국여자축구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돼 기쁘다”면서 “물론 부족한 점이 많다. 강팀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은 것은 소득이지만, 체력과 근력이 약하다는 것은 보완해야할 점이다. 이번을 계기로 한국여자축구가 점차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탁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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